한국인이라는 정체성

by yongg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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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ersion française est ici)

“너는 한국인이지, 우리처럼 한국인 피가 흐르잖아. » 수많은 한국인들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말이다. 이 얘기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내게 반복하는 말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 그래도 이렇게 바싹 마른 염소젖 치즈를 맛나게 먹어 치우는 걸 보면, 우리처럼 프랑스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상스럽게도 나는 내 정체성을 두고 나오는 상반되는 이 두 가지 견해 모두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 교육 과정을 밟은 것으로 나를 프랑스 국민으로 받아들여주는 프랑스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비록 째진 눈을 하고는 있지만 프랑스 떼루아의 매력을 사랑한다. 그리고 인접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편할 날 없었던 데다가 지금까지도 어찌할 도리 없는 지정학적 쟁점으로 인해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일에 더 제한적인 방식으로(여기에 제국주의적인 성격은 없다.) 범위를 설정하게 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을 인접 강대국의 제국주의에 좌지우지되는 약소국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번영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흔치 않은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개발후진국이었던 한국은 이제는 인접 국가들이 따르고자 하는 모델이 되었다. 아시아 전체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아시아 젊은이들이 열망하는 현대적이면서도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면서도 아시아라는 배경과 가치를 위반하지 않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한국인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잘 팔리는 것은 이런 ‘꿈’의 영향도 조금 있다. 이것은 과거의 제국주의로 여전히 많은 인접국가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섬나라 일본에 비하면 더 큰 성공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이주노동자 증가 측면에서 기회의 땅이라 하는 것과 반대로,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한국은 자국민을 보낼 수 있는 어디로든 보내던 나라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으로, 젊은이들은 미국 연합군 편에서 베트콩에 맞서 싸우기 위해 베트남으로, 노동자들은 서독의 광산으로, 여기 더해서 고아들은 유럽과 미국의 입양아로 보냈다. 그랬던 나라 한국이 지금은 더 나은 급여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국적 노동자들을, 결혼상대자와 더 나은 미래를 찾고 있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젊은 여성들을 끌어 당기고 있으며 K-Pop이나 새로운 모험, 자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일을 찾아 오는, 실업률이 4%를 넘어가는 일이 흔치 않은 나라에서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 선진국 젊은이들의 무리도 가세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인들이 만들어 온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증가 추세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오늘날의 이 한국이 조금씩 흔들고 있다. 그 규모에 비하면, 서울은 놀랄 만큼 국제적인 면모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민족적 다양성은 어떤 한국인들을 새로운 상황 속에 던져 놓고 당황하게도 만들면서, 여기 저기서 움트고 있다. 그들의 땅 위에 있는 외국인들, 침략자도 아니고 점령군도 아닌 그들, 한국의 부를 강탈하거나 문화를 말살할 의도가 없는 그들, 그들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할 뿐이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매력적이고, 번영한 나라이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하자면, 살고 싶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외국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 경제 논리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팔 벌려 안을 준비까지 되어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저 출산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향후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외국인의 손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전망은 걱정스럽다. 한국 사회에 외국인 유입은 문화적으로 절충이 난망한 외국인들이 기득권을 획득하면 할수록, 한국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 요소로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한국에서는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미디어들이 어떤 주제를 책임 있는 방식으로 다루기보다는 공포라는 불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한국 최대 일간지 조선일보가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의한 범죄 양상을 ‘시한 폭탄’이라 제목 붙인 한국어 기사(2016년 1월 15일자)에서 보여준 불안도 이런 형태다. 기사는 단도직입적이다. 잘 추려진 뒷얘기들로 시작되는 이 기사는 한국인의 여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온 외국인 남성이라는 가장 부족적인 공포를 야기하는 소문을 퍼뜨린다. 평판에 해가 되는 사진들로 한국인 여성을 협박하는 우즈베키스탄 남성, 또 다른 한국인 여성을 납치하고 폭행한 베트남 남성이 소문의 주인공이다. 이 두 범죄자는 물론 불법체류자인 관계로, 기자는 능숙한 솜씨로 불법이민자와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거를 관련 수치를 가져와 마무리짓는다. 2008년과 2012년 사이 외국인 범죄자 수는 2만623명에서 2만6,663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정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우선 이 수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 수만이 아닌, 외국인 전체 이민자 수를 가리키고 있다. 기자 자신도 대부분의 범죄자가 불법체류자일 것이라는 경찰청의 단순한 추정 뒤에 숨어 자신의 논거를 진행시켜 가는 와중에 이 점을 말없이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폭넓은 규모로 나타나는 현상에서 틀림없는 견해를 가져오려면, 불법체류자의 범죄 발생 증가 추세를 한국 인구 전체의 범죄 발생 증가율과 함께 비교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 경찰청은 단기 기억에 약해 보이는데, 2012년 헤럴드 경제 기사에 따르면, 같은 경찰청에서 2010년 당시 범죄와 이민 인구 관련 조사에서 발간되어 나온 추정이 아닌 실제 수치가 나온다. 외국인 합법 체류자 인구 전체 중 범죄자 비율이 1.88%에 머무른 것에 반해, 한국 인구 전체 대비 한국인 범죄자 비율은 3.58%였다. 또한 외국인 불법 체류자 인구 전체 대비 외국인 불법 체류자 범죄자 빌율은 1.13%에 불과했다.

연약한 한국인 여성의 관점을 다시 가져와서 요약해보자. 저녁 늦은 시간 인적 없는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맞닥뜨리는 상황에 처한 한국인 여성이 범죄에 희생될 확률은 그 낯선 사람이 외국인일 때보다는 한국인일 때 두 배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에서 걱정하던 그 ‘시한폭탄’은 (외부 세계로 나아가며 섞이고, 또 섞이는 와중에 정체성의 기초로서 작용했던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민족이라는 현상에 동요한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환상 속이 아니라면) 어디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 순수 혈통이라는 권리에 대한 재검토가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이역만리 떨어진 본국으로부터 파생된 것은 아니다. 그 계기는 사실 서울 북쪽에서 멀어야 80Km 떨어진 또 다른 한국, 그 곳에서부터는 북한이 시작되는 휴전선으로부터 나왔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이 세상 어느 다른 민족도 북한 사람들 만큼 한국 사람들과 같은 ‘피’로 이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말하기 좋아하는 오천 년 넘는 유구한 공동의 역사로 화합한 두 국경을 마주한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적 기원, 같은 언어, 같은 음식, 술과 노래를 즐기는 같은 취향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산 정책 연구원의 조사에 응한 20-29세 일단의 한국인들에 따르면, 그들 중 단지 5.4%만이 북한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혈통이라 생각하고 있다. 응답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중국인이나 미국인들을 그들의 형제 북한 사람들보다도 더 가깝게 느낀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할 때, 마음 속에서 피가 사라지는 것은 두 세대면 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 한국의 연장자들과 북한 사람들 전체가 생각하듯, 수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단일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살면서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국경을 초월하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 아니면, 여기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하듯, 국경은 휴전선에서 멈추며, 경제 개발이라는 경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평화와 번영에 대한 열망이라는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65년 만에 이루어진 남한이라는 정체성이 우선일까?

남북의 통일 가능성은 당연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한국인들에 대답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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