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샤를리다

by yongg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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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갈 때까지 내 어린 시절을 매혹시켰던 어린이 TV 프로그램 ‘레크레 아되(Récré A2)’를 기억한다. 프로그램 사회자 도로테는 꿈꾸는 듯한 얼굴에 바가지 머리와 존 레논 스타일의 안경이 인상적인 카뷔(Cabu)라는 만화가와 함께였다. 카뷔가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생방송으로 그려내던 도로테와 초대손님들의 만화는 나를 포함한 어린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안겨 주곤 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프랑스어 수업을 기억한다. 17세기 프랑스는 국민들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절대군주제를 대표하게 되었다. 라퐁텐느와 몰리에르는 그때 이미 표현의 자유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우화와 희곡에서 권력자들의 권력 남용을 조롱했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권력자들조차 그들의 작품을 지지했다. 권력자들에 맞서는 우화라는 무기가 가진 해학, 대중적인 열광을 불러 일으키는 솜씨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샤를리 에브도의 새로운 호(號)를 파리 신문 가판대에서 매주 만났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로는, 매주 발간이었다. 시사 현안과 당대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가 달라졌지만, 모든 기사에는 라퐁텐느와 몰리에르의 작품과 함께 묶어도 될 만한 공통점이 있었다. 강자에 대한 조롱이었다. 기사로써 조롱을 완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샤를리 에브도는 재능 있는 작가들의 만평에 우선권을 주는 편이었다. 그 작가들 중 하나가 내 어린 시절을 매혹시켰던 만화가 카뷔다.

비지니스 스쿨의 학생이 되어 프랑스 미디어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샤를리 에브도가 매체의 독립성과, 상대가 누구든 무례하고, 강경하며, 불손할 수 있는 역량을 잃지 않기 위해 광고의 지원을 받지 않는 흔치 않은 프랑스 미디어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된 것을 기억한다.

2006년 샤를리 에브도가 예언자 무함마드를 묘사한 덴마크 일간지의 만화를 재수록했던 것도 기억한다. 이슬람 신자들에게 불손한 행위였다. 이슬람교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자를 갖고 있다.

친구들과의 격렬한 논쟁, 이 같은 내용의 만화가 발표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었던 것을 기억한다. 강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도발은 그렇다 쳐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프랑스에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면,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 방향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만화 발표 이후, 이슬람 과격파들의 협박이 뒤따랐고, 마치 도발에 대한 보복처럼 샤를리 에브도 건물을 전소시킨 방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프랑스 언론, 정치, 대다수 국민의 연대로 샤를리 에브도는 파리 11구로 건물을 이전할 수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 10분 거리였다.

용납할 수 없는 테러 사건 이후, 샤를리 에브도를 움직여 왔던 동기가 무었인지 더 확연하게 보였다. 샤를리 에브도는 그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도발하는 기사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샤를리는 나를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먼저 느꼈던 것,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던 것을 방어하고 있었다. 샤를리가 방어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다.

보복당할 두려움 없이, 우리가 가진 권리 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몇몇 이슬람 신자들을 자극한다는 위험을 야기하는 것과 이슬람 과격파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하는 것 사이에서 샤를리 에브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보여주었다. 위협에 굴하지 않고, 보복을 당하거나, 몇몇 사람들을 자극하게 되는 것과 관계 없이, 말하고, 표현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원칙을 위해 샤를리 에브도가 구현해 낸 헌신이고 희생이다. 편집장 샤르브 (Charb)는 2012년에 이루어진 한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저는 아이도 없고 부인도 없습니다. 자동차도 없고, 대출도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잘난 척한다고 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습니다.’ 만화를 그렸던 카뷔는 어떤 질문지에서 이런 대답을 했었다. ‘저는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2015년 1월 7일 11시 30분에 이슬람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이 샤를리 에브도의 회의실에 침입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회의실에서는 주간 편집 위원회로 모든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샤르브, 카뷔, 다른 기자 8명과 경찰 2명이 서서 죽었다. 이슬람 과격 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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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지지를 보여 주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은 허망하게 날아가 버린 귀중한 생명에 더하여 이 사건이 프랑스가 가진 가치의 기초가 걸려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내가 샤를리’라고 외치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함으로써, 프랑스의 근본 가치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치는 프랑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싸우고 있다. 몇몇 프랑스인의 희생이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동기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입 다물고 말지라는 유혹이 다가올 때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침묵을 부추길 때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샤를리 에브도의 용기와 고집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또 한국에서도 이 참여의 외침이 울려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샤를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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